연평도 편지] 아미쉬의 세례와 진중 세례
아미쉬의 세례를 통해 한국 개신교의 세례를 되돌아보다
입력 : 2009년 01월 28일 (수) 14:41:56 [조회수 : 48] 김재일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뉴스앤조이> 독자 여러분에게 늦게나마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겨울의 연평도는 풍랑이 심하여 배가 일주일에 두세 번도 운항을 안 합니다. 1월 한 달은 꼼짝하지 말고 있으면서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하느라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 일을 제외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작년부터 하던 몇 권의 책을 번역하고, 마무리 하는 일과 아울러 연평도의 형제 섬인 소연평도에 있는 소연평 교회에서 군인들의 세례와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소연평도에는 십여 명의 해병대 용사들이 6개월 동안 교대로 파견을 나가 있기 때문에 군목이 없고, 소연평 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는 할머니 권사님이 군인들의 신앙을 할머니처럼 돌보고 계십니다.
그러한 군인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학습이나 신앙 훈련도 거의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례식을 주관해 달라는 말에 소연평 교회의 당회장인 저로서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특히나 재세례파인 아미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며 공감하고 글을 쓰는 저로서는 더욱 더 그랬습니다.
그래서 해병대 연평교회 군목에게 부탁하여 세례식은 군목이 베푸는 것으로 하고, 저는 예배만 주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의 세례에 대한 문제, 특히 학습이나 신앙 고백도 거의 없이 숫자 놀음으로 흐르는 군인들의 집단적인 진중 세례와 그와 유사한 일반 교회의 세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미쉬의 뿌리인, 재세례파 전반의 세례 문제를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아미쉬는 다 아시다시피 아나밥티스트(재세례파)의 후예들입니다. 재세례파는 종교개혁 시대에 가톨릭에서 아무런 신앙적 고백이 없이 행해진 유아 세례를 부정하고 모든 성인(成人)들은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종교개혁가들입니다.
원래 취리히의 종교개혁가인 쯔빙글리의 가르침을 따르던 아나밥티스트들은 세례 문제에 이르러 노선을 달리하였습니다. 그들은 세례는 부모나 영주에 의한 타율적인 혹은 강제적인 신앙 고백이 아닌 성인으로서 자발적인 신앙 고백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는 중앙 권력을 행사하던 가톨릭뿐만 아니라, 의회를 통한 지방 권력을 행사하던 칼빈과 쯔빙글리의 이해가 일치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똑같이 재세례파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엄청난 탄압을 한 것이 바로 아나밥티스트들의 시작입니다.
한국에서는 몇 년 전에 <한겨레> 신문에 부르더호프 공동체에 대한 기사로 잘 알려진 철저한 초대 교회의 공동생활을 살고 있는 후터라이트와, 일반 개신교회와 유사한 형태의 목사라는 직제와 교회를 가지고 있는 메노나이트들이 바로 지금 남아 있는 재세례파의 후예들입니다.
주류 개신교회에서는 중세 가톨릭의 마녀 사냥과 박해만을 이야기하지만, 종교개혁 시대 이후에 거의 200년 이상 유럽에서 재세례파에 가해진 박해와 탄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신앙적 노선에 따른 종교적인 이유는 표면적이고, 중앙 권력이든 봉건적 지방 권력이든 세상 권력과 기득권 종교 권력이 결합하여 만든 합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철저히 비폭력 평화노선을 따른 세 가지 형태의 재세례파만이 남아 있지만, 토마스 뮌쩌로 상징되는 독일 농민전쟁의 급진적인 종교개혁가들이 대부분 재세례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가톨릭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중앙집권적 권력을 배경으로 한 반면에, 마르틴 루터는 중앙 권력으로 벗어나려던 봉건 영주에 기반을 두었고, 칼빈과 쯔빙글리가 당시 새롭게 부상되던 신흥 부르주아 계급인 시의회에 그 기반을 두었던 반면에 토마스 뮌쩌를 비롯한 재세례파들은 민중-특히 농민들에게 그 기반을 두었습니다.
그러한 민중들에게 있어서 초대교회에 나오는 신도들의 공동생활은 계급 없는 사회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루터나 칼빈이 종교개혁을 신학화 혹은 이데올로기화 하여 지방 권력과의 적당한 타협에 의한 종교개혁을 하고자 한 것에 비하여, 그들은 말 그대로 성경대로 사는 삶을 종교개혁의 목표로 내세웠기 때문에 그들을 일컬어 급진적 혹은 근본주의 종교개혁가들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날의 개신교 근본주의는 전혀 근본적이지 않은 근본주의 신앙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앙 권력과 지방 권력 즉 기득권을 가진 종교개혁가들의 박해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현재 남아 있는 근본적 재세례파와 토마스 뮌쩌를 중심으로 한 급진적 재세례파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정확한 비교는 아니지만, 19세기 말에 있었던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북접과 남접의 노선 차이 같이, 민중 혁명 혹은 박해에 대한 저항 노선을 택한 토마스 뮌쩌를 비롯한 독일 농민전쟁 지도부는 역사에서 사라져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철저한 비폭력 평화 노선을 택하여 무수한 순교자를 양산하고 엄청난 박해를 이겨 나가면서, 스위스와 독일에서 헝가리와 모라비아로 우크라이나로 러시아로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로 300년 동안 유랑 생활을 한 사람들의 후예가 바로 지금의 메노나이트와 후터라이트 그리고 아미쉬들입니다.
물론 세례를 너무 가볍게 베푸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바울 사도는 분명히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로마서 6:3)라고 말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중세 가톨릭과 같이, 거의 아무런 체계적인 신앙 교육도 없이 신앙적인 결단도 없이 지휘관이 주도하는 약간의 휴식과 초코파이 하나와 맞바꾸는 듯한 집단 세례는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교육도 없이 세례식 전날 혹은 그것도 불참하면 당일 간단한 소요리문답에 '네'라고 대답만 하고 세례식을 베푸는 건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뇌물과 급행료로 고속 성장을 구가했던 졸부 자본주의와 유사합니다.
더군다나 요즈음은 가톨릭도 영세를 받으려면 예비 신자반에 들어가서 최소한 6개월 이상 교리 교육과 신앙 교육 그리고 성지 순례 등의 교육 받아야 하는데, 오직 말씀만을 내세운 종교개혁가의 후예라는 한국 개신교에는 거의 그런 것이 없습니다.
많은 논란은 있지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고린도전서 15:29)와 같이 말했습니다. 말씀에서와 같이 초대교회에서 심지어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기까지 했다면 유아 세례를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 장로교 목사인 제 생각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발표된 한국인의 종교 지표에 보면 다른 종교는 자기들이 주장하는 신도수가 면접을 통하여 통계적으로 작성한 신도수보다 훨씬 과장한 것을 볼 수 있었고 개신교도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만은 오히려 교단에서 발표한 신도수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신도수가 더 적었는데, 바로 철저히 영세를 받은 자만 교인으로 발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종교개혁의 원인 중 하나였던 믿음에 기초한 교인이 아니라 권력과 타율에 기초한 신앙 행태를 가톨릭은 오히려 청산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 개신교는 아직도 답습하고 있습니다.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아마 이러한 뿌리 없는 신앙 행태가 그렇게나 열심을 내면서 전도를 함에도 개신교의 교인수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이 곳 연평도에 유배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TV와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 않기에 시간이 많이 남습니다. 그 시간 동안 물질주의와 세상과 철저히 하나가 되어버린 껍데기 근본주의 신앙이 아니라,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말 그대로 성경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 그리하여 산위의 등불이 되는 사람들을 소개할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씀과 신앙 때문에 철저한 유무상통의 공동생활을 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 전기와 자동차를 거부하고, 비폭력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 무기를 손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공부하고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세례파에게 있어서 세례는 자발적으로 이러한 삶을 살겠다는 것이기에 그들에게는 유아 세례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삶은 강제적이거나 타율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의 실패가 증명하지 않습니까.
김재일 / 예장생협대표·연평도 연평교회 목사
최종편집 : 2009년 01월 29일 (목) 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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