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 2008.03.12 17:38:07
[지구촌을 섬기는 사람들―(9) 호찌민 영산제자학교 김남균 선교사] “동남아 선교 전진기지 만들죠”
베트남 최대의 도시 호찌민은 후텁지근했다. 게다가 거리 곳곳을 누비는 오토바이 때문에 매연도 심했다. 걷는 사람도, 오토바이족들도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퇴근길, 한꺼번에 몰려든 오토바이 틈에 끼어 한 시간 남짓 차 속에서 실랑이를 하다 주택들이 밀집한 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시내와 달리, 호찌민 주거지역은 한산했다. 오후 7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는데 드문드문 거리를 산책하는 노인들만 보일 뿐이다.
◇비전을 세우는 영산제자학교="할렐루야!" 어디선가 들려온 젊은 여성의 낭랑한 목소리. 그녀를 따라 5분쯤 걸었을까. 주변의 집들과 똑같이 생긴 4층짜리 한 건물에 오토바이 10여대가 굉음을 내며 속속 도착했다. 건물 앞에는 안내판이 없었다. 그 집 안으로 들어가보니 20대 초반의 베트남 청년 20여명이 손을 흔들며 "할렐루야!"를 외쳤다. 사회주의 공산국가로 선교활동의 제한을 받는 베트남에서 자유롭게 '할렐루야'라고 말할 수 있는 곳, 바로 영산제자학교(교장 김남균 선교사)였다.
매주 수요일은 이 학교 교장인 김남균 선교사가 강의하는 날이다. 오후 8시쯤, 4층에 위치한 10여평의 예배실에 모인 청년들은 강의에 앞서 한참 동안 찬양을 불렀다. 김 선교사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손님을 소개했다. 미국 애틀랜타 임마누엘순복음교회를 담임하는 김병기 목사였다. 김 목사는 김 선교사에게 베트남을 향한 소망과 비전, 꿈을 심어준 영적 스승이었다.
"믿음은 꿈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꿈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 예수님의 사람은 비전을 세워갑니다. 바로 여러분이 주인공입니다. 여러분은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종이 위에 꿈을 적고 외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이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다! 성령님이 나를 도우신다!" 진지한 모습의 청년들은 종이에 꿈을 적어내려갔다. 선교사, 가족의 구원, 기독교가 베트남의 국교가 되길….
◇베트남 선교의 전초기지를 꿈꾼다=영산제자학교는 2005년 현지인 사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김남균 선교사가 설립했다. 교육 과정은 2년이다. 현재 1·2기생 24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며 베트남 복음화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있다. 이들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6시까지 성경공부 및 묵상기도를 드리고 아침 식사를 한 뒤 직장이나 학교로 간다.
오후 7시쯤 귀가하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밤 9시부터 12시까지 영성훈련을 받는다. 김 선교사는 "24시간 공동체 생활을 기본으로 기도와 말씀은 물론 삶 가운데서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하는 제자로서의 삶을 가르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가 뭐래도 훈련받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아직 성도 수는 적지만 보이지 않는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위 기독인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면접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은 그러나 처음 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는 이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순간 거듭남을 체험하고 뜨거운 열정이 생겼다.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고 직장에서, 학교에서 동료들에게 주님을 전했다.
지난해 김 선교사는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부모들을 초청, 효도잔치를 열었다. 행사 이후 김 선교사는 수시로 전화하고 심방하며 그 가족들도 크리스천으로 만드는 전도의 열매도 거뒀다. "당시 한 가정을 빼고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한분은 자신이 집안의 장손이기 때문에 당장 개종하는 게 쉽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집집마다 놓여있던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가족들을 보면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더 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예배실 중앙 벽면에 베트남어로 '신앙의 비전'이 적혀 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신앙이 베트남에도 임하기를 이들은 매일 밤 낮으로 기도하고 있다. 또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이 같은 신앙의 비전을 바탕으로 2010년까지 100명의 제자를 양성하고 30개 현지인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자존심이 강한 나라 베트남을 품다=4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베트남, 54개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베트남은 자존심이 강한 나라다. 오죽하면 "가난해서 밥을 못 먹어 배가 고파도 내색하기 싫어 매운 고추를 입에 물고 이마에 땀을 흘리게 한 다음 이를 쑤시며 이웃집을 방문한다"는 이야기가 있을까. 베트남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전도하는 것은 불법이다. 호찌민 시내에만 48개의 공인교회가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 인구는 5%가 되지 않는다.
1994년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훈련원(당시 훈련원장이 김병기 목사였다)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던 때 김 선교사는 제비뽑기만 하면 '베트남'이 걸렸다. 1년여간 사역지를 놓고 기도했던 그는 응답으로 여겼다. 1995년 베트남 선교사로 파송된 그는 원주민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면서 현재 호찌민 시내에 영산제자학교 외에 현지인 사역자를 둔 소망교회를 개척했다. 또 중부 지역인 다낭시에 한 곳, 시골 지역 네 곳에 현지인 교회를 세웠다.
그렇게 선교의 열매를 맺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었다. 2000년 그는 강제 추방됐다. "4개월간 한국에서 지내는데, 가시방석이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직도 안 들어갔어?'라고 묻는데, 어찌나 답답하던지요. 한번 추방당하면 5년간 베트남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에 계신 한 장로님의 도움으로 컴퓨터 엔지니어로 다시 초청 비자를 받아 베트남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삶의 연속입니다."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사역지를 돌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김 선교사. 그는 "현지인 제자들이 베트남 곳곳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날까지 나의 기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김 선교사 이메일:fgknk@hanmail.net).
호찌민=글·사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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